신창원

출생 : 1967년 5월 28일

출생지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신체 : 174cm, 67kg, O형

가족 : 5남매 중 넷째(3남)

 

 

 

 

 

 

신창원 어린시절

1990년대 후반, 탈옥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범죄자 신창원은 4남 1녀중 넷째로 태어나 지독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는 신창원을 때렸고 나중에는 계모까지 들어와 사랑을 받지 못한채 자라왔습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가출을 시작하고 중학교에 진학한지 3달 만에 퇴학을 당하죠.

 

그가 범죄자가 된 계기는 그의 저서에 남양국민학교 5학년 때 선생님으로부터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막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악마가 태어났음을 느끼고 어둠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21세기에 인권존중을 그나마 어느 정도는 받으며 초중등 교육을 마친 세대들이 보기에는 "세상에 그딴 막돼먹은 몹쓸 쓰레기 같은 교사들이 어딨냐?"라며 믿지 못하고 그냥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거짓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당시만 해도 만화 검정고무신이나 소설 흰종이 소설 에 나오는 것처럼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도 없는 이러한 잡다한 납입금을 안 냈다는 이유로 교장이나 교감 같은 높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엄하게 가르쳐야 강하게 자란다는 핑계나 다름없는 명분을 내세워 담임들에게 돈을 안 가지고 온 아이들을 때리라고 지시하거나 담임들이 교실 앞에 불러세워 놓고,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안 내면 졸업 못한다' 식으로 으름장을 놓은 온건한 타입부터 두들겨 패고 모욕감을 주거나 심지어 수업받을 자격이 없다며 교실에서 내쫓는 썩어빠진 부패한 교사들이 분명히 있었고 심지어 많았다. 인권의식 및 시민의식이 낮았던 당시 시대 분위기도 한 몫 했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신창원이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만들었습니다.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남의 밭과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쳐먹고 닭,수박 서리르 하기 시작한게 도둑 인생의 시작이었죠.

 

그러다가 14살때 경찰서에 끌려가게 됩니다.

 

어느 날 좀도둑질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이때까지는 신창원을 범죄자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창원의 아버지는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답시고, 경찰관들도 훈방 조치한 신창원을 굳이 다시 끌고 와서 소년원에 넣어달라고 사정을 하여 잡아넣었습니다. 아버지의 의도는 정말 좋은 뜻이었는지 어떤지 몰라도, 이 때문에 신창원의 인생은 망가졌죠. 소년원을 다녀온 일을 계기로 감옥에 한 번씩 갔다 올 때마다 그의 범죄는 나날이 대담해졌으며, 결국에는 강력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강도살인치사죄! 무기징역!

이후 서울에서 고향 선후배 4명과 모의해 슈퍼마켓과 금은방 등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 1989년 3월 28일에 주범인 김양훈이 문구점을 운영하는 피해자를 살해하게 됩니다.

 

강도살인치사죄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북북부제2교도소에서 복욕하죠.

 

 

신창원 탈옥

 

 

이후,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되어 복역하다 97년 1월 탈옥을 저지릅니다.

 

노역 작업 도중 손에 넣은 작은 실톱날 조각으로 하루 20분씩 무려 4개월간 화장실 쇠창살을 몰래 조금씩 그어 마침내 지름 1.5cm의 쇠창살 2개를 끊었고, 감방을 빠져나와서 외벽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으며, 끊은 쇠창살로 20m 가량 떨어진 교도소 내 교회 신축공사장 철담장 밑의 언 땅을 폭 53cm 깊이 20cm 가량 파내어 공사장으로 들어간 후, 공사장에서 주운 밧줄을 타고 외부로 통하는 공사장 펜스를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갔습니다.

 

그 뒤 2년 6개월간 4만여km 의 거리의 도주를 계속하였으며, 도주를 다니는 동안 빈집들을 털며 훔친 현금으로 생활하였고 이동 수단도 훔친 차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렇게 도망 다니는 동안 잡힐 듯 하면서도 체포 직전에경찰 의 추격을 따돌린 것만 무려 6번!!!

 

연 인원 97만 여명이 동원되었고, 전국 6개 지역 지방 경찰청에 수사 본부가 설치되는 등 거의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주 행각을 벌였죠.

 

그 중 유독천안시  근처에 자주 출몰했기 때문에 천안 시내 이곳저곳 마다 경찰 병력이 배치되고 차량 검문이 실시되었으며 천안 시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다. 천안 이외에도 지나간 곳이 많아 곳곳마다 해당 지역 경찰서 높으신 분들 목이 날아갔습니다. 

 

당시 신창원 검거 실패로 징계 받은 경찰은 29명, 총경 이상만 1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신창원은 방송을 타며 전국구 급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현상금이 1,000만원에서 5,000만원이 넘어갑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사상 최고액으로, 2011년까지 매 년마다 산불을 일으킨 방화범에 현상금 3억원이 걸릴 때까지 경신 되지 않았고, 2014년유병언 이 현상금 5억원으로 기록을 다시 깹니다.

1999년 당시 5,000만원은 단순 소비자물가지수 가치환산으로도 2018년 기준 약 8,000만원이며, 최저임금으로 산정해보면 1999년 최저임금은 시급 1,600원이므로 시급 7,530원인 2018년에는 약 2억 3,500만원이고, 당시 대치동 은마아파트 35평이 1억 5천만원에 매매되던 시절이니 엄청나게 큰 현상금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99년 7월 16일 전라남도 순천시금당 대주아파트 104동 205호에서 가스레인지 수리공은 당시 우연히 의뢰 받은 집을 수리하다가 신창원을 보았는데, 신창원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으며, 경찰에 신고 후 심지어 부동산에 들어가서 그 집이 여자의 명의로 된 건지 확인까지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집을 계약한 다음날 바로 입주했다는 것을 알고 신창원임을 확신했다고 하죠. 대개 이사하려면 계약하고 며칠 뒤 돈을 주고 들어오는 게 보통이기 때문.

그가 검거될 당시 입었던 미쏘니 니트 셔츠가 화제가 되어 한때 저 딱 달라붙는 티셔츠가 '신창원 티셔츠'라며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검거된 뒤 징역 22년 6개월이 추가되었고 그는 흉악범을 가둬두는 청송교도소의 2.6m2의 독방에 수감되었습니다.

 

 

 

2004년 고입,대입 검정고시 합격! 상담사 학사학위 준비

청송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공부를 시작해 2004년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영이어 합격해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상담사 자격증을 목표로 감옥 내에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2011년 시점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학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학자 같은 문장…신창원 편지 공개 화제

“최악 상황 피해 몸부림”…장기간 독방 격리 불만 편지 공개한 문성호 소장, 트위터에서 석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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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1년 8월 18일 감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합니다.

 

신창원은 극심한 저산소증으로 상당히 위중했으나 얼마 후 의식을 회복했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늦게 발견된 탓에 뇌손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자살기도' 신창원 편지

 

 

신창원, 편지 공개…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신건웅 기자] 자살을 기도한 신창원(44)이 외부로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최근 문성호 자치경찰연구소장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이 편지는 지난해 1월 4일 신창원이 보낸 편지로 수감생활의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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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은 편지에서 “저는 22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이중 12년 3개월은 엄중 격리된 환경에서 악몽, 환상, 환청, 불안, 폐쇄 공포증, 우울장애, 불면 등을 겪었고 현재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10년 3개월 동안 징벌 1회 받은 적이 없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도주를 기도한 적이 없는데 제가 왜 10년 5개월째 독방에 격리돼 있고, 왜 수갑을 차고 다녀야 하며 TV시청을 금지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제가 위험한 행동을 보였다면 모를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중경비 시설에 수용되었으니 같은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헌법과 법의 취지에 위반되는 것 같아 이 문제에 대해서도 조취를 취할 것이다”라고 말한뒤 “그러나 제가 지금의 환경을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또한 신창원은 “탈옥 전과자인 저는 독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진로를 변경해 담 안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온 힘을 다하려는 마음을 갖게 됐다”며 “행정소송, 헌법소송 등 직접적인 방법과 더불어 논문 등으로 문제점을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 신중히 준비 중이다”라고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신창원의 편지를 공개한 문 소장은 신창원의 자살 시도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라기보다 장기수에 대한 절망적인 수용 실태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추가 형량에 대한 평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그간 있었던 유영철, 강호순,정남규,정두영,조두순 등 온갖 흉악범들이 등장하면서, 최근 들어서 신창원 탈옥 사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선두 주자는 다름아닌 표창원으로 그의 요지는 한 마디로 "신창원이 잘못한 건 맞는데 법원이 처벌을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면 되나? 그 조두순도 12년 형밖에 못받았는데 도망 좀 잘 쳤다는 이유로 22년 6개월 증형이 타당한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위에서도 전술했듯, 탈옥 사건 이후로도 수감 생활 도중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학업에 정진하면서 세상을 더욱 놀라게 했다는 점을 보면, 여러모로 안타깝다는 의견들이 대다수며, 부모님을 잘 만났더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다만 비판론자들은 밀레니엄을 전후한 시대와 2010년대의 시대 상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죠.

그 당시에는 2010년대보다 형량을 가혹하게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걸 2010년대 시각에서 평한다는 건 무리한 처사일수도...

당시 신문 기사를 봐도 강도 사실이 밝혀지면 최대 사형에 아니면 징역 22년 6월 수준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사형을 구형받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어차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인지라 사형당하는 거 아니면 추가 형량을 얼마나 선고하든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것도 아닙니다.

 

신창원이 애 아빠가 될 뻔했다고 합니다.

한 내연녀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되자 태어날 때까지 잘 보살피자고 약속했지만 신창원이 도망을 가버렸고 내연녀는 혼자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어 낙태했다고 하죠.

신창원은 이에 죄책감을 느꼈던지 도주 중에 쓴 일기장에서도 '나 살자고 여자와 자식을 버린 놈'이라며 자책했다합니다.

 

신창원 기부>!

신창원이 기부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부자들만 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신창원에게 우호적인 혹은 대리 만족을 요구하는 여론이 신창원 신드롬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청소년을 비롯해서 젊은층 사이에 신창원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신창원이 체포될 당시 입었던 옷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래서 당시 전문가들이 방송에서 이것을 사회 병리 현상이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신창원이 기부에 쓴 돈은 극히 일부며, 절도한 돈은 대부분 도주 비용과 동거녀와의 살림에 썼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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